모교 모운지 바웬디 교수가 2023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이에 MIT 동문이자 바웬디 교수로 부터 박사 학위를 받으신 김성지 포스텍 화학과 석좌교수님께서 기고해 주신 글과 함께 기쁜 소식을 전하며, 바웬디 교수님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하 김성지 포스텍 화학과 무은재 석좌교수님 투고글] 모운지 바웬디 교수 2023년 노벨 화학상 수상 - 양자점, 빛의 마법으로의 안내 올해의 노벨 생리의학상과 노벨 물리학상이 차례대로 발표되고, 10월 4일에는 과학 분야에서 마지막 남은 노벨 화학상의 발표가 중부유럽 표준시(CET) 기준 오전 9시 30분 (한국시간 오후 6시 30분)에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식 발표 약 3시간 전부터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양자점의 발견 및 개발에 공을 세운 모운지 바웬디, 루이스 브러스, 알렉세이 에크모프에게 돌아간다는 뉴스가 나왔으며, 이는 언론사의 단순 예측이 아니라 스웨덴 왕립과학원으로부터 사전에 유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왕립과학원 측은 언론사들의 보도 직후에, 아직 수상자가 결정되지 않았다며 해당 사실을 부정하였으나, 필자는 양자점 기술의 발전에 기여한 학자들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긴장감을 가지며 공식 발표를 기다렸다. 마침내 사전 유출된 명단 그대로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공식 발표되었다. 졸업생으로서 몹시 반갑게도 MIT 교수인 모운지 바웬디가 공동 수상하였다. 바웬디 교수는 필자가 박사학위를 받은 지도교수이기도 하여 그 감회가 새로웠다. 바웬디 교수는 자유롭고 깊은 사색을 좋아하는 철학자 타입의 교수이다. 그는 마일스톤과 스펙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무엇이든지 탐구할 수 있고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구체성과 시간관리가 없어서 대학원생 입장에서는 어려운 케이스이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당시의 지적 자극과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자산이다. 본 글에서는 입자 크기가 빛의 색깔을 결정하는 양자점을 발견하고 합성에 기여한 세 사람의 업적을 살펴보면서 양자점의 기술의 발전과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현대의 연금술사 세상 만물이 물, 불, 공기, 흙의 4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을 근거로 하여 고대인들은 원소의 성질을 바꾸면 다른 원소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결국 흙 속에 있는 구리, 아연, 납 등과 같은 싼 물질들의 성질을 바꿔서 값비싼 황금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는 연금술로 이어졌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연금술사들은 황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실험 화학이 정립되고 현대 화학의 기초 지식을 마련하고 금속 및 세라믹 기술이 크게 발전하는 모태가 되었다. 하지만 연금술을 통해 화학이 발전하면서 역설적으로 원자는 변하지 않는다는 개념이 확산하면서 연금술은 허황한 꿈이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비록 현대 과학 기술로는 화학적인 반응을 통해 납을 금으로 변환시키는 연금술을 실현하지 못했지만, 이번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의 (MIT) 모운지 바웬디 (Moungi G. Bawendi)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의 루이스 브러스(Louis E. Brus) 명예교수, 前 나노크리스탈 테크놀로지 소속의 알렉세이 예키모프(Alexey Ekimov) 박사의 양자점 나노기술 연구를 바탕으로 값싼 돌멩이를 나노크기로 쪼갬으로써 형형색색의 빛을 내는 쓸모있는 물질로 전환하는 현대의 연금술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은 물질의 크기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양자점(quantum dot)이라고 일컫는 수 나노미터 크기의 반도체 나노입자를 발견하고 이를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상자 속 입자’ 문제를 풀면 전자(electron)의 에너지는 전자가 가둬진 공간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커지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반도체 내부의 전자는 약 10 나노미터 내외의 공간을 사용하는데, 입자의 크기가 이보다 줄어들게 되면 전자의 양자구속효과에 의해 에너지가 점차 커지게 된다. (그림 1) 반도체 입자내 전자의 에너지는 빛의 흡수, 방출 및 전자의 움직임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어 입자의 크기를 제어하여 물질의 색깔을 비롯한 다양한 성질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도체 입자 크기에 따른 양자 현상에 대해서는 사실 20세기 초부터 많은 학자들이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나노크기의 입자를 실제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에크모프 박사와 브러스 교수는 각각 매우 작은 반도체 나노입자를 만들고 이들이 벌크(bulk) 물질과는 다른 광학적 성질을 보이는 양자 효과를 실험적으로 확인하여 나노기술을 활용한 연금술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1981년 러시아 바빌로프 국립광학연구소의 알렉세이 예키모프 박사는 금속염이 함유된 유리의 색상을 연구하다가 유리에 함유된 염화구리 반도체 나노결정의 크기에 따라 빛과 반응하는 성질이 달라진다는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이를 러시아 학술지에 발표하였다. 하지만 해당 논문이 러시아어로 발표되는 바람에 연구 결과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지는 못하였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미국 벨 연구소에 근무 중이던 루이스 브러스 교수는 물 속에서 계면활성제로 둘러쌓인 콜로이드 상태의 황화카드뮴 양자점을 합성하였고, 수용액에 분산된 황화카드뮹 양자점이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가 커지면서 그 색깔이 달라지는 양자 효과를 발견하였다. 이후 브러스 교수는 양자점의 크기와 에너지 구조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론적 고찰을 발표함으로써 양자점 연구에 촛불을 켜기 시작했다. ▲ <그림 1> 양자점은 입자 크기에 따라 전자의 분포 공간이 달라 다른 에너지의 빛을 낸다. (출처 : 노벨상 위원회) 양자점 인공분자로 자연의 색을 구현하다 올해 노벨상을 수상한 3인의 과학자 외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지난 30여년 동안 양자점의 합성법을 개량하고 특이적인 광학적, 전기적 성질을 분석하여 양자점의 특성을 향상해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양자점 인공원자로 순수한 색을 표현하는 기술을 완성하였으며 이는 양자점을 디스플레이 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지게 되었고, 2013년 CES2013에서 SONY가 양자점을 이용한 TV 시제품을 최초로 발표하였다. 이후 삼성전자를 비롯하여 전세계 디스플레이 회사들이 자연의 순수한 색을 표현할 수 있는 양자점 디스플레이 제품을 출시하여 일반인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물질의 크기를 조절하여 특성을 변화시키는 양자점 자체의 기술도 대단하지만, 기초연구를 통해 산업적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부분도 노벨상 추천 위원회의 주목을 끌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양자점 디스플레이에서 하나의 서브 픽셀 내에는 대략 10⁸ ~ 10¹⁰개의 양자점이 채워진다. 양자점은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입자 크기가 그 색깔을 결정하는데, 비록 하나하나의 양자점은 자연의 색을 모사할 수 있는 생생한 빛을 낼지라도, 픽셀 내에 여러 크기의 양자점이 혼재되어 있다면 크기별로 서로 다른 색깔이 섞여 선명하지 않고 흐릿한 색이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선명한 디스플레이를 만들려면, 주형을 이용하여 동일한 모형의 물질을 찍어내듯이, 양자점 합성 비커에서 동일한 크기 및 모양의 입자를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물속에서 마이셀 형태로 제조되는 초창기 양자점 합성법은 그 크기가 불균일하고 양자점 표면이 안정하지 못해 시간이 지나면서 양자점의 크기가 변하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양자점의 결정구조가 완벽하지 못해 빛을 내는 성질이 매우 약했다. 즉 초창기에는 양자점이라는 나노물질이 크기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는 신기한 현상을 보이지만, 연구를 확장하고 응용하기에는 재료의 품질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MIT의 바웬디 교수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끓는 기름과 계면활성제를 함께 활용해 양자점을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방법을 고안하여 1993년 미국화학회지에 발표하였다. 섭씨 300도 정도의 매우 뜨거운 기름과 계면 활성제가 혼합된 용액에 양자점을 구성하는 원소가 포함된 유무기 분자체(전구체)를 재빠르게 주입하여 양자점 씨앗물질을 만들고, 반응 온도 및 농도를 제어하면서 양자점의 균일한 결정 성장을 유도하였다. 물 대신 끓는점이 높은 기름을 반응 용매로 사용하여 양자점 합성 온도 범위를 확장하고 반응 전구체 후보물질을 다양화하여, 양자점 핵 형성 및 성장 반응 인자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크기의 양자점 입자를 균일하게 만들었다. 또한 뜨거운 용액에서 입자를 성장시켜 결정성을 향상하고 내부 결정 결함을 줄여 뛰어난 발광성을 가지는 고품질의 양자점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바웬디 교수는 이와 같은 고온열분해법 양자점 합성법을 통해, 까만색 돌덩이의 카드뮴셀레나이드 반도체 물질을 나노크기로 선별 합성하여 무지개 색깔의 밝은 빛을 내는 연금술을 보였다. (그림2) 이와 같은 혁신적인 양자점 합성 기술이 발표된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양자점 합성 및 분광학적 분석 연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특히 에너지 장벽이 큰 무기물 껍질로 양자점을 보호하는 핵/껍질 구조의 양자점 합성법이 추가로 발표되면서 양자점의 발광특성과 안정성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이를 통해 밝기, 색순도, 안정성이 모두 확보된 인화인듐(InP) 기반의 양자점 소재를 양산하는 기술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완벽히 분리된 청색, 녹색, 적색의 순수한 삼원색의 조합으로 자연의 색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양자점 디스플레이가 제품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림 3) 양자점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양자점 분야의 노벨상 수상이 더욱 반갑게 느껴지게 된다. (그림 4) ▲ <그림 2> 서로 다른 색깔을 내는 카드뮴 기반의 양자점 용액 (출처 : MIT 바웬디 교수 연구실) ▲ <그림 3> 색순도가 높은 양자점 디스플레이의 발광 파장(왼쪽)과 상대적으로 색순도가 낮은 기존 디스플레이의 발광 파장(오른쪽), (출처, 삼성 디스플레이) ▲ <그림 4> 양자점 디스플레이 텔레비전의 원리 (출처, 삼성 디스플레이) 디스플레이를 넘어 에너지 및 양자 및 바이오기술로.. 양자점의 특이한 빛의 마법 기술은 디스플레이 기술에 가장 먼저 적용되고 발전되었지만, 밝고 순수하고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양자점의 빛 신호는 질병, 임신, 코로나 감염 등 진단 기기 소재로 활용하면 훨씬 더 예민한 센서나 탐침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적외선 대역을 흡수하고 발광하는데 있어 무기재료인 양자점은 유기물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특성을 가지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진동전이로 인한 방해없는 강한 적외선 방출이다. 적외선은 피부 및 조직을 깊숙이 투과하는 성질로 인하여 체내 정보를 외부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적외선 양자점 프로브를 이용한 새로운 의료영상의 개발 또한 근미래에 크게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림 5) 이러한 새로운 양자점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빠르고 정확한 질병진단은 물론 암 영역의 미세하고 정확한 구분으로 암수술의 정확도를 높이는 등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러 양자점의 응용 중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양자점의 또 하나의 용처는 양자 연산 및 통신이다. 하나의 양자점에서 나오는 순수한 상태의 빛 알갱이 신호는 양자 컴퓨터 및 양자 통신에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양자점을 매개로 빛 신호를 전기 신호 또는 화학반응 신호로 전환하여 고효율의 태양전지나 촉매로 활용하는 연구도 현재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양자점 소재는 무궁무진한 활용 가치를 가지고 있다. ▲ <그림 5> 가시광 카메라 쥐 영상 (좌), 혈관에 적외선을 방출하는 양자점을 주입한 쥐의 적외선 카메라 영상 (우). 쥐의 주요 장기와 임파선 그리고 임파절이 적외선 영상화되고 있다. (출처, 포스텍 김성지 교수 연구실) 우리나라의 양자점 기술은 전 세계 연구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양자점 디스플레이 기술을 산업화하였으며, 학계 및 연구계에서도 고품질의 양자점을 합성하고, 이를 LED 디스플레이, 센서, 에너지 기술로 활용하는 연구를 선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모운지 바웬디 교수를 비롯하여 양자점 연구의 석학들이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기술 교류를 하며, 해외석학들이 한국의 양자점 연구자들과 활발한 토론을 하면서 양자점 기술의 발전을 이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기반으로 국내외 양자점 연구자들이 협력하여 양자점 분야의 연구가 더욱 활성화 되고 발전되기를 고대하면서 글을 마친다. ▲ <그림 6> 2023년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 QD&PV 연구회 해외석학초청 워크샵 (왼쪽), MIT 모운지바웬디 교수 강연 (오른쪽) (출처,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 QD&PV 연구회) [필자소개] sungjee@postech.ac.kr MIT 화학과에서 이번 노벨상 수상자 중에 한 명인 모운지 바웬디 교수 사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바드 대학과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였다. 그 후, 현재까지 포스텍 화학과에서 재직하고 있으며, 무은재 석좌교수, BK연구단 단장, 시스템생명공학부 주임교수,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위원, 과학기술특별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